서대문 독립공원 방문기 | 독립문 | 서대문 독립문

2022. 7. 8. 07:22국내여행

안녕하세요 찐 여행자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곳은 서울 서대문독립공원과 독립문 그리고 독립관입니다.

 

고등학교 때 한번쯤은 체험학습으로 가봤던 기억이 있는 곳이라 더욱 반가우실수도 있는

 

서대문독립공원과 독립문입니다. 

 

독립문
독립공원 조망지점
유관순열사 순국 102주년
서대문독립공원 방문자센터
뒤에서 본 독립문

 

 

서울 독립문은 사적 (Historic Site)으로, 우리 겨레의 독립정신을 영원히 상징하는 곳입니다. 

 

독립문은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하여,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온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세웠습니다.

 

우리 민족의 자발적인 참여속에서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가 모금을 주도하고 고종의 승인을 얻어

 

1897년 11월 20일에 완공되어 120년도 더 된 역사적 유산입니다.

 

 

독립문은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하고, 조선인 심의석이 공사하였다고 전해집니다. 

 

화강암을 쌓아 만든 독립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습니다. 독립문의 앞면과 뒷면에 있는 현판석에는 각각 한글로 '독립문'을 새기고 

 

그 좌우에는 태극기를 새겼습니다. 

 

 

서재필 선생 상
독립신문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서재필 선생은 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서재필선생은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고 윤치호, 이상재 등의 

 

협력을 얻어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종래 중국을 사대하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국민의 성금을 모아 한국독립의 상징으로서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또한 토론회를 통해 시민들을 모아 나라의 독립과 개혁에 대한 토론을 시키고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조차 요구를 반대하는 등 국민의 독립사상과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켰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의 경비에 바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셨으나

 

1951년 1월 5일 미국에서 서거하였습니다. 

 

정부에서는 서재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으며

 

1994년 미국에서 선생의 유해를 봉환하여 국립현충원에 안장하였다고 합니다.

 

수경시설
독립관 앞 마당
독립관
독립관 앞 순국선열참배 헌화대
멀리 보이는 독립문

 

독립관은 원래 1407년에 중국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지어진 영빈관으로서 초기의 이름은 모화루였으나,

 

1429년 확장대축되면서 모화관이라 개칭되었습니다. 세워질 당시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350m 떨어진 영천동이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되어있는

 

조선시대 한식 목조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한말에 이르러 서재필이 독립협회를 세우면서 독립관이라 개칭하고, 애국토론회를 개최하여

 

자주, 민권, 자강사상을 고취시키는 독립운동의 기지로써 사용한 곳이기도 한 독립관입니다. 

 

그러자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독립운동탄압의 일환으로 이 건물을 철거해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서울특별시는 1989년 독립공원 조성계획에 의해 서대문형무소를 의왕시로 이전하고,

 

일제가 수많은 애국선열들을 참형시켰던 서대문형무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상징성을 애국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역사박물관으로써 기능하게하는 한편, 그 일부 자리에 지상 1층, 지하1층의 구조로

 

독립관을 복원하였습니다. 

 

독립과 민주의 길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3.1 독립선언 기념탑
3.1 독립선언 기념탑
3.1 독립선언 기념탑
애국열사 유관순
유관순열사에 대한 설명
서대문독립공원 관리자분이 타고다니는 카트
서대문독립공원 안내도
장기두시는 어르신들
서대문 독립공원

 

 

지금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를 빗대어 '헬조선'이라는 자조섞인 단어까지 등장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비하면 지금은 그 상황보다는 훨씬 나아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용기를 잊지 않고, 이 평화로움과 부유를 후대에 잘 물려주도록

 

사회구성원으로써 열심히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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